발해의 행정체계와 5경 15부 62주의 비밀

 


발해는 단순히 고구려의 후계국이 아니었다. 698년 대조영이 건국한 발해는 동북아시아에서 독자적인 행정과 문화를 발전시킨 복합 국가였다. 특히 5경 15부 62주로 대표되는 발해의 행정체계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정교하고 효율적인 구조를 자랑했다. 이 제도는 단순한 영토 구획이 아니라 정치적 중심과 지방 통치를 균형 있게 결합한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그 세부 운영 방식은 오랫동안 문헌의 부족으로 인해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발해의 행정체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를 세밀하게 살펴본다.

1. 5경 제도의 기원과 의미

발해의 수도 체계인 5경은 단일 수도 체제가 아닌 다중 중심 구조였다. 상경용천부를 비롯해 중경현덕부, 동경용원부, 남경남해부, 서경압록부가 이에 해당했다. 이 중 상경은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고, 나머지 4경은 군사적·행정적 균형을 위한 분산 수도였다. 이러한 다경 체제는 중국 당나라의 영향을 받았으나, 발해는 이를 자국 실정에 맞게 재구성했다. 즉,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자주적 선택이었다.

2. 15부와 62주의 구조

발해의 지방 행정은 ‘부(府)’와 ‘주(州)’로 구성되었다. 각 부는 중앙의 지시를 직접 받았으며, 그 아래 여러 주가 배속되었다. 이는 중앙집권을 유지하면서도 지방 자치를 일정 부분 허용한 체제였다. 주에는 현지 지배층 출신의 관리가 임명되어 지역 민심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당시 발해의 영토는 만주와 연해주, 한반도 북부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세분화된 체계가 필요했다.

행정 구분 개수 주요 기능
5경 5곳 정치·문화 중심 및 지역 균형
15부 15곳 중간 행정 단위, 군사 및 세무 관리
62주 62곳 지방행정, 민심 관리, 세금 징수

3. 발해 행정체계의 특징

발해의 행정은 단순한 중국식 모방이 아니었다. 당나라의 주현제(州縣制)를 기반으로 하되, 고구려의 부체제와 말갈의 부족 통치를 절충했다. 이를 통해 발해는 다양한 민족을 포용하고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중앙과 지방의 완충 역할을 맡은 ‘부’ 제도는 특히 독창적이었으며, 이는 고려시대의 5도양계 제도 형성에도 영향을 주었다. 발해의 행정체계는 문화적으로 혼합적이면서도 실질적 통치에 초점을 맞춘 시스템이었다.

4. 사라진 기록과 남은 흔적

불행히도 발해의 멸망(926년) 이후 많은 문헌이 소실되었고, 발해의 행정 구조는 일부 중국 사서와 일본 기록을 통해서만 확인된다. 그러나 최근 고고학 연구를 통해 상경용천부의 도시 구조와 관청 터가 발견되면서, 문헌의 기록이 실체적 근거를 갖추게 되었다. 특히 상경의 중심 축선과 관청 배치는 당나라 장안성의 구조와 유사하지만, 배산임수 지형을 따른 점에서 발해의 독자성이 드러난다.

결론

발해의 행정체계는 다민족 국가가 중앙집권을 유지하면서도 지역 균형을 고려한 탁월한 시스템이었다. 5경 15부 62주는 단순한 행정 구획이 아니라, 발해가 동북아시아 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정치적 토대였다. 비록 그 기록의 대부분이 사라졌지만, 남은 흔적만으로도 발해의 제도적 완성도와 통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발해의 행정은 오늘날의 지방분권과 중앙집권의 균형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도 유의미한 역사적 단서를 제공한다.

다음 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