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는 동북아시아의 내륙 강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뛰어난 해양 교류국이었다. 8세기에서 10세기 사이 발해는 서쪽으로는 당나라, 남쪽으로는 신라, 동쪽으로는 일본과 활발한 교역을 이어갔다. 당시 동북아의 해상로는 단순한 교역 통로가 아니라 문화와 기술, 사상의 흐름을 잇는 다리였다. 발해의 무역로는 단순히 경제 활동을 넘어 정치적 외교 수단으로 작용했으며, 발해가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린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 글에서는 발해의 주요 무역로와 교역 품목, 그리고 해상 네트워크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1. 발해의 대외 교역 노선 개요
발해의 교역로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첫째는 당나라와 연결된 **육상 실크로드 루트**, 둘째는 일본으로 이어지는 **동해 해상 루트**였다. 육상 루트는 요하 일대를 거쳐 당나라로 이어졌고, 해상 루트는 오늘날의 함경도 해안을 따라 남하해 일본 서부 지역으로 향했다. 이 두 경로는 단순한 무역망이 아니라 발해의 외교 전략의 일환으로 운영되었다.
2. 주요 교역로와 항구
발해는 해상 교류를 위해 여러 항구 도시를 발전시켰다. 그중 대표적인 항구는 ‘염주(鹽州)’와 ‘발해만 연안의 동경용원부 항구’였다. 이곳에서 일본 상인들과의 거래가 이루어졌으며, 당나라 사신이 발해를 방문할 때도 주로 이 항로를 이용했다. 또한 육상로의 중심은 상경용천부에서 출발해 요동 지역을 지나 당나라 변경으로 이어지는 노선이었다.
| 노선 구분 | 주요 경유지 | 교역 상대국 | 주요 품목 |
|---|---|---|---|
| 육상 루트 | 상경 → 요하 일대 → 당나라 변경 | 당나라 | 비단, 서적, 금속 공예품 |
| 해상 루트 | 동경용원부 → 염주 → 일본 서해안 | 일본, 신라 | 모피, 인삼, 청자, 해산물 |
3. 교역 품목과 문화 교류
발해는 자국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교역의 기반으로 삼았다. 대표적인 수출품은 모피, 인삼, 벌꿀, 어패류 등 자연산품이었고, 수입품으로는 당나라의 비단과 도자기, 일본의 금속 제품과 공예품이 있었다. 그러나 교류의 핵심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불교 경전, 유학 서적, 금속 공예 기술 등 지식과 문화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이는 발해 문화의 성숙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4. 발해 사신과 일본 방문 기록
일본의 『속일본기(續日本紀)』에는 727년부터 10세기 초까지 34회에 걸쳐 발해 사신이 일본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 발해 사신은 단순한 외교 사절이 아니라 상인, 학자, 기술자를 포함한 종합 교류단이었다. 일본은 발해를 통해 중국 문물을 간접적으로 수입했으며, 발해 또한 일본으로부터 금속 기술과 도자 제작법을 들여왔다. 이러한 상호 교류는 발해를 동아시아 무역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만들었다.
5. 발해 해상 교역망의 역사적 의미
발해의 해상 무역은 단순한 경제활동을 넘어선 정치적 전략이었다. 당시 당나라와 신라의 압박 속에서 발해는 해상 교역을 통해 독자적 외교 공간을 확보했다. 이를 통해 발해는 주변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외교를 전개하며 자주성을 유지했다. 오늘날 해양 교류의 관점에서 보면, 발해는 이미 9세기 동북아시아의 해양 경제권을 형성한 선구적 국가였다.
결론
발해의 무역로와 해상 교류망은 단순한 경제 네트워크를 넘어선 문명 교류의 장이었다. 육상과 해상을 모두 활용한 이중 교역체계는 발해의 정치적 자주성과 경제적 번영을 가능하게 했다. 비록 지금은 그 흔적이 희미하지만, 발해의 교역망은 동북아 고대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국제 네트워크로 평가된다. 발해의 항로를 따라가다 보면, 바다 위의 길이 곧 문명의 길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