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왕이 재위 20년 사이에 정권을 세 번이나 통째로 뒤집었다. 숙종이다. 서인이 남인을 몰아내고, 남인이 서인을 몰아내고, 다시 서인이 남인을 몰아내는 일이 20년도 안 되는 시간에 반복됐다. 이 환국정치의 한복판에는 왕비 인현왕후와 후궁 장희빈의 운명이 정치적 격변에 따라 뒤바뀌는 이야기가 겹쳐 있다.
표로 보는 숙종 대 3대 환국
| 환국 | 연도 | 배경 | 결과 |
|---|---|---|---|
| 경신환국 | 1680 | 영의정 허적의 유악 사건, 삼복의 변 | 남인 대거 실각, 서인 집권 |
| 기사환국 | 1689 | 장희빈 소생 원자 정호를 둘러싼 대립 | 서인 실각(송시열 사사), 인현왕후 폐위, 남인 집권 |
| 갑술환국 | 1694 | 남인의 인현왕후 복위 저지 시도가 발각 | 남인 몰락, 인현왕후 복위, 서인 재집권 |
| 무고의 옥 | 1701 |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고변 | 장희빈 사사 |
경신환국, 첫 번째 뒤집기
1680년 3월, 남인의 영수였던 영의정 허적의 집에 경사가 있어 잔치가 열렸다. 비가 내리자 숙종은 왕실 전용의 기름 먹인 천막인 유악을 허적의 집에 보내려 했는데, 허적이 이미 왕의 허락 없이 이를 가져다 쓴 사실이 알려지면서 숙종이 크게 노했다. 이를 계기로 숙종은 군권을 서인 쪽 인물들에게 넘기는 전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곧이어 허적의 서자가 종친인 복창군·복선군·복평군과 역모를 꾸몄다는 이른바 삼복의 변까지 불거지면서 허적, 윤휴 등 남인의 핵심 인사들이 죽거나 유배됐다. 이렇게 남인이 대거 실각하고 서인이 정권을 잡은 것이 경신환국이다. 즉위 초 남인에게 정국을 맡겼던 20세의 숙종이 불과 몇 달의 사건 처리로 정권 전체를 뒤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사례이기도 했다.
기사환국, 원자를 둘러싼 대격변
1689년 1월 11일, 숙종은 후궁 소의 장씨(훗날의 장희빈)가 낳은 아들을 원자로 정한다고 선포했다. 서인의 영수 송시열은 이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숙종의 격노를 사 제주도로 유배됐다가 정읍에서 사약을 받았다. 정국은 순식간에 서인에서 남인으로 넘어갔고, 같은 해 5월 2일 숙종은 인현왕후를 폐비시키고 장씨를 왕비로 책봉했다. 서인 정권이 몰락하고 남인이 재집권한 이 사건이 기사환국이다. 정치적 명분과 후계 문제, 왕의 애정 관계까지 얽힌 조선 후기 정쟁의 대표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갑술환국, 다시 뒤집힌 판세
기사환국으로 집권한 남인의 시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1694년 남인 쪽 인물들이 폐비된 인현왕후의 복위를 막으려다 오히려 그 시도가 발각되면서 숙종은 남인을 대거 몰아내고 서인(이 무렵에는 소론과 노론)을 다시 불러들였다. 이것이 갑술환국이다. 이 조치로 인현왕후는 왕비로 복위했고, 왕비였던 장씨는 다시 희빈으로 강등됐다. 앞서 기사환국 때 사약을 받았던 송시열의 관작도 복구되고 제사가 명해지는 등, 남인 집권기의 조치들이 대부분 뒤집혔다. 기사환국 당시 훼철됐던 성혼과 이이의 문묘 배향도 이때 다시 회복되면서, 서인의 사상적 정통성 역시 함께 복권된 셈이 됐다.
장희빈의 최후, 무고의 옥
왕비 자리를 잃고 다시 희빈이 된 장씨는 이후에도 궁중에 머물렀다. 그런데 1701년, 자신의 거처인 취선당 뒤편에 신당을 차려놓고 무당을 불러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숙빈 최씨의 고변으로 시작된 이 사건이 무고의 옥, 혹은 신사옥사라 불린다. 숙종은 장희빈에게 자결을 명했고, 그의 오빠 장희재를 비롯한 관련자들은 처형됐다. 남인 계열 학자였던 허목, 윤휴, 윤선도 등의 관작도 이때 다시 추탈됐다. 아들을 원자로 만들며 정점에 올랐던 장희빈은 결국 그 아들 경종이 세자로 있던 시기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운명을 맞았다.
왜 숙종은 환국을 반복했나
세 차례의 환국은 단순히 왕비와 후궁 사이의 애증극이 아니라, 숙종이 특정 붕당의 권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활용한 통치 전략이라는 해석이 많다. 하나의 붕당이 오래 집권하면 신권이 왕권을 넘어설 위험이 있다고 본 숙종은, 결정적인 사건을 계기로 정권을 통째로 교체하며 신하들이 왕의 뜻에 의존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무고한 희생과 정치 보복이 반복됐지만, 동시에 숙종 개인의 왕권만큼은 재위 기간 내내 확고하게 유지됐다. 실제로 세 환국 모두 붕당 사이의 자체적인 세력 다툼이 아니라 숙종의 결단으로 촉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악 사건, 원자 정호, 복위 저지 시도라는 계기 자체는 사소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때마다 숙종은 신속하고 단호하게 정권 교체를 밀어붙였다.
자주 묻는 질문
Q1. 인현왕후와 장희빈은 몇 번 지위가 바뀌었나?
인현왕후는 1689년 기사환국으로 폐위됐다가 1694년 갑술환국으로 복위했다. 장희빈은 그 사이 왕비였다가 갑술환국 이후 다시 희빈으로 강등됐고, 1701년 사사됐다.
Q2. 세 환국의 순서는 어떻게 되나?
1680년 경신환국(서인 집권) → 1689년 기사환국(남인 집권) → 1694년 갑술환국(서인 재집권) 순으로, 약 14년 사이에 정권이 세 번 바뀌었다.
Q3. 장희빈의 아들은 어떻게 됐나?
원자로 책봉됐던 아들은 이후 세자를 거쳐 숙종의 뒤를 이어 경종으로 즉위했다. 어머니 장희빈의 죽음은 그가 세자로 있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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